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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dex Story/Leidex is

레오나르도 다빈치(1506~1510)의‘작업노트 Codex Leicester’

천재는 태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만들어지는 것일까? 참 애매하다. 우선 빈센트 반 고흐 같은 경우를 보면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맞다. 고흐는 정규 미술 교육도 받지 않았고, 스승도 없었다. 그는 직업상으로 보면 화가보다는 전도사로 살았던 기간이 훨씬 길다.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도 당시로서는 매우 늦은 나이인 스물여덟 살 때였다. 하지만 고흐는 화가가 되자마자 하늘에서 계시를 받은 듯 광기어린 그림을 그렸고, 흡사 ‘신의 주문’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천재적인 작품들을 남겼다.

레이덱스의 작업노트 Codex Leicester

반면 발명가인 토머스 에디슨은 전형적인 만들어진 천재다. 에디슨은 어린 시절 호기심이 많은 소년이기는 했지만 객관적으로는 열등생이었다. 그런 그를 세계적인 발명가로 만든 것은 노력이었다. 예를 들어 축전지를 발명할 때는 무려 2만5000번의 실험을 했다. 에디슨의 다른 많은 발명품들도 벼락같은 계시보다는 각고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오죽했으면 본인이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땀으로 만들어진다”고 했을까. 
그렇다면 천재의 두 가지 특징을 모두 갖춘 사람은 없을까?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기도 했고, 여기에 엄청난 노력을 더해 역사를 바꾼 사람 말이다. 당연히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다빈치는 일단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일화가 있다. 다빈치는 열다섯 살 때 안드레아 델 베르키오라는 화가의 제자이자 조수로 그림에 입문한다. 어느 날 다빈치는 스승이 그리다 만 캔버스 여백에 장난으로 천사를 그려넣는다. 스승은 다빈치가 그린 천사를 보고 경악한다. 이미 스승인 자기를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스승 베르키오는 그 충격으로 회화를 접고 조각가로 전향을 한다. 스승으로 하여금 업(業)을 접게 할 만큼 다빈치의 타고난 재능은 놀라웠다. 
다빈치가 만약 재능만으로 살았다면 역사에 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다빈치는 대단한 노력파이기도 했다. 그의 일생은 숨막힐 정도의 부지런함과 끝없는 탐구로 점철되어 있다. 그는 단 한 순간도 허투로 살지 않았다. 

 

레오나르도의 작업노트에서 영감을 얻은 레이덱스의 로고타입


노력형이었던 그의 삶을 증명해주는 증거가 노트다.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음으로 나아가고, 다시 그것을 기록하는 치밀한 노력파였다. 해부학·식물학·지질학 분야 지식에서부터 낙하산·장갑차·잠수함 등의 설계도, 거기에 요리법, 금전출납 명세서, 농담과 우화에 이르기까지 다빈치의 노트에는 그의 모든 경험과 상상력이 담겨있다. 그가 평생 작성한 ‘다빈치 노트’는 약 1만3000쪽 분량에 이르며, 이 중 7200쪽 정도가 현존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빌 게이츠가 72쪽 분량의 작업노트 ‘코덱스 레스터(Codex Leicester)’를 3080만달러(약 348억원)에 구입해 화제를 모은 적도 있다. 
우리는 그가 남긴 노트에서 ‘노력형 천재’를 만날 수 있다. 그의 노트를 살짝 들여다보자. 그의 노트는 참 독특하고 재미있다. 

“배고플 때만 먹고 가벼운 음식으로 만족할 것. 잘 씹어 먹고 항상 단순한 것만 먹을 것. 점심 식사 후 낮잠을 자지 말 것. 화내지 말고 무거운 분위기를 피할 것. 체조를 할 때는 움직임을 너무 크게 하지 말 것.” 

그가 얼마나 경건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인생을 살려고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작은 생활지침까지 만들어서 하루하루를 보낼 정도로 다빈치는 낭비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더 재미있는 메모도 많다. 다빈치가 사망하기 1년 전인 1518년에 남긴 기하학 원고의 끝 부분에는 특이한 말이 적혀 있다. 몇 개의 도식이 그려져 있고 깔끔하게 정돈된 글씨가 빽빽하게 쓰여 있는 필사본 원고의 마지막 줄에는 “수프가 식기 때문에”라고 쓰여 있다. 
무슨 뜬금없는 말일까. 추리를 해보자. 다빈치는 채식주의자였기 때문에 야채수프를 자주 먹었다. 아마 수프는 충직한 가정부였던 마투린이 끓였을 것이다. 마투린은 다빈치가 유서를 통해 ‘모피로 안감을 댄 좋은 품질의 검은 코트’를 유산으로 남겨줄 정도로 신뢰했던 여인이다. 
그날 다빈치는 기하학 연구를 몰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마투린이 “선생님 수프가 다 식어요. 빨리 오세요”라고 소리를 쳤던 것으로 추측된다. 뭔가 아쉬웠던 그는 원고 끝부분에 일단 “수프가 식기 때문에”라고 쓰고 아래층 식탁으로 갔을 것이다. 훗날 그 기하학 원고의 다음 장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날의 연구가 계속됐는지 미완성으로 끝났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단지 우리는 다빈치가 수프 먹을 시간도 아까워할 만큼 일벌레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다빈치 노트에 남겨진 글 중에는 그가 노력파로 살 수밖에 없었던 슬픈 사연을 털어놓는 대목도 있다. 

“오만한 어떤 사람들은, 내가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얕보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당시 엘리트 귀족주의에 사로잡혀있던 사람들은 서자로 태어나 피렌체의 공방을 전전하며 어깨너머로 예술과 학문을 익힌 그를 비하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상상은 이미 당대를 뛰어넘고 있었고 그 상상력은 노력을 통해 현재화되고 있었다. 
그는 늘 사색했고, 늘 배웠으며, 늘 깨달음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이미 죽는 방법 또한 배우고 있었다”는 그의 메모에서는 속세를 초월한 천재의 풍모가 느껴진다. 
다빈치는 타고난 재능도 재능이지만 지적 열망과 그 열망을 실천해 낸 성실함과 호기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위대해졌다. 한 사람의 힘으로 르네상스라는 거대한 물결을 주도해 낸 말 그대로 ‘르네상스인’이었다. 

다빈치는 새 펜촉으로 첫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나에게 말해 달라”는 글귀를 노트에 썼다. 왜 그는 그런 글귀로 첫 글을 시작했을까. 세상이 자신에게 진리를 알려주길 원하는 엄숙한 기원 아니었을까.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비행기 설계도를 그렸던 한 천재는 지금도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나에게 말해달라’고… 

[허연 문화전문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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